2023년02월11일 40번
[과목 구분 없음] (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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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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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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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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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정답률: 29%)
문제 해설
정답> ①
'신문으로 보는 일제 강점기 노동 운동'이라는 제목 아래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갔다가 평양 경찰서에 검속되어 있는 평원 고무 공장 파업 여공 (가)이/가 31일 밤까지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그는 평원 고무 공장이 임금 삭감을 취소하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중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가)'는 강주룡(1901~1931)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 강주룡은 임금 삭감에 저항하여 (평양의) 을밀대(평양의 고구려 시대 누정) 지붕에서 농성하였다(1931.5.28). 지붕 위에서 강주룡은 무산자의 단결과 노동 생활의 참상을 호소하였다. 체포되어 평양 경찰서로 끌려간 뒤에도 76시간 동안 단식을 하는 등 항의하다 결국 이듬해 서른한 살의 나이로 숨지고 말았다.
*강주룡의 말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우리는 양철 지붕 밑에서 화로를 안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합니다. 고무 냄새 때문에 늘 코가 얼얼하고 머리가 아픕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에서 우리들의 임금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931년 5월 16일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파업을 시작한 뒤 우리는 계속 공장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못 받아 굶어 죽으나 파업하다가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5월 28일 경찰을 불러 밤 11시에 우리들을 회사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나는 시장에서 광목을 사서 줄을 만들었습니다. 그 줄을 타고 12미터나 되는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와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9시간 반이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임금이 깎이는 것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임금이 깎이면 평양에 있는 다른 고무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도 깎일 것입니다. 나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권리를 포기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습니다."
오답 해설>
② 남자현 지사(1872~1933)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간도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 가입하고 여자 권학회를 조직하는 등 계몽 활동에 힘쓴 독립운동가이다(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림). 조선 총독 암살을 기도하였고, 국제 연맹 리튼 조사단(하얼빈 방문)에 강력한 독립 의지를 표명한 혈서('조선 독립원')를 전달하고자 시도하였으며 만주국 주재 일본 대사 암살 계획이 발각되어 체포된 뒤 순국하였다.
③ 유관순(1902~1920)은 충남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오늘날 3·1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④ 윤희순(1860~1935)은 시아버지 유홍석(1841~1913)(유인석의 재종형)이 1896년 충북 제천에서 의병으로 출정하자 의병들에게 음식과 옷을 조달하는 한편 의병가 8편을 만들어 의병들의 사기를 높였다. 또한 여성들의 의병 활동을 이끌어내는데도 적극 앞장섰다. 이후 1911년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인재 양성을 위한 노학당을 설립하고(1912), 항일 투쟁을 위해 무순 조선 독립단을 조직하기도 한 독립운동가이다(1915).
'신문으로 보는 일제 강점기 노동 운동'이라는 제목 아래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갔다가 평양 경찰서에 검속되어 있는 평원 고무 공장 파업 여공 (가)이/가 31일 밤까지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그는 평원 고무 공장이 임금 삭감을 취소하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중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가)'는 강주룡(1901~1931)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 강주룡은 임금 삭감에 저항하여 (평양의) 을밀대(평양의 고구려 시대 누정) 지붕에서 농성하였다(1931.5.28). 지붕 위에서 강주룡은 무산자의 단결과 노동 생활의 참상을 호소하였다. 체포되어 평양 경찰서로 끌려간 뒤에도 76시간 동안 단식을 하는 등 항의하다 결국 이듬해 서른한 살의 나이로 숨지고 말았다.
*강주룡의 말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우리는 양철 지붕 밑에서 화로를 안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합니다. 고무 냄새 때문에 늘 코가 얼얼하고 머리가 아픕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에서 우리들의 임금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931년 5월 16일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파업을 시작한 뒤 우리는 계속 공장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못 받아 굶어 죽으나 파업하다가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5월 28일 경찰을 불러 밤 11시에 우리들을 회사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나는 시장에서 광목을 사서 줄을 만들었습니다. 그 줄을 타고 12미터나 되는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와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9시간 반이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임금이 깎이는 것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임금이 깎이면 평양에 있는 다른 고무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도 깎일 것입니다. 나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권리를 포기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습니다."
오답 해설>
② 남자현 지사(1872~1933)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간도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 가입하고 여자 권학회를 조직하는 등 계몽 활동에 힘쓴 독립운동가이다(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림). 조선 총독 암살을 기도하였고, 국제 연맹 리튼 조사단(하얼빈 방문)에 강력한 독립 의지를 표명한 혈서('조선 독립원')를 전달하고자 시도하였으며 만주국 주재 일본 대사 암살 계획이 발각되어 체포된 뒤 순국하였다.
③ 유관순(1902~1920)은 충남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오늘날 3·1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④ 윤희순(1860~1935)은 시아버지 유홍석(1841~1913)(유인석의 재종형)이 1896년 충북 제천에서 의병으로 출정하자 의병들에게 음식과 옷을 조달하는 한편 의병가 8편을 만들어 의병들의 사기를 높였다. 또한 여성들의 의병 활동을 이끌어내는데도 적극 앞장섰다. 이후 1911년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인재 양성을 위한 노학당을 설립하고(1912), 항일 투쟁을 위해 무순 조선 독립단을 조직하기도 한 독립운동가이다(1915).